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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심리: 의심, 광기, 공포

by sophia08 2025. 12. 21.

버블 심리로 인한 불안감 극복 방법
버블 심리로 인한 불안감 극복 방법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 아이작 뉴턴조차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거품 사태에서 전 재산을 잃고 남긴 말입니다. 금융 시장의 역사는 곧 버블의 역사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부터 2000년대 닷컴 버블, 그리고 최근의 암호화폐와 부동산 시장의 급등락에 이르기까지, 자산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그 이면에 흐르는 대중의 심리 패턴은 놀랍도록 똑같이 반복됩니다. 버블은 단순히 유동성의 공급이나 거시 경제 지표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 즉 탐욕과 공포, 그리고 질투와 합리화가 뒤섞인 거대한 심리극입니다. 투자자가 시장의 사이클을 이해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차트나 재무제표를 넘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나 장 폴 로드리기(Jean-Paul Rodrigue)가 제시한 버블 차트는 결국 인간 심리의 지도와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버블이 형성되고 붕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중 심리의 변화를 '잠복기와 인식 단계의 의심', '광기 단계의 탐욕과 합리화', 그리고 '붕괴 단계의 부정과 공포'라는 세 가지 핵심 단계를 통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겠습니다.

 

1. 잠복기와 인식 단계: 스마트 머니의 진입과 대중의 의심(Disbelief)

모든 거대한 버블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철저한 무관심과 냉소 속에서 싹틉니다. 이 시기를 '잠복기(Stealth Phase)'라고 부르며, 이때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대중이 아닌 소위 '스마트 머니'라고 불리는 기관 투자자나 통찰력 있는 소수의 개인들입니다. 이들은 펀더멘털 대비 자산 가격이 극도로 저평가되어 있거나, 새로운 혁신 기술이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조용히 매집을 시작합니다. 이때 자산 가격은 바닥을 다지고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지만, 대다수의 대중 심리는 여전히 '의심(Disbelief)''공포'에 머물러 있습니다. 과거의 하락장에서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거나,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론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어느 정도 상승하여 1차 저항선을 뚫고 올라가는 '인식 단계(Awareness Phase)'에 진입하면, 기관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가세하며 거래량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해당 자산에 대한 뉴스를 조금씩 다루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논조는 신중하거나 회의적입니다. 대중들은 상승하는 차트를 보면서도 "이것은 일시적인 반등일 뿐이야(Dead Cat Bounce)", "경기가 이렇게 안 좋은데 오를 리가 없어", "저러다 다시 폭락할 거야"라는 인지 부조화를 겪으며 진입을 주저합니다. 이를 '우려의 벽(Wall of Worry)'을 타고 오른다고 표현합니다. 이 단계에서의 심리적 핵심은 '방어 기제'입니다. 대중은 자신이 투자를 하지 않아 수익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상승의 이유를 애써 부정하고 하락의 근거를 찾아 자신의 비참여를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가격이 멈추지 않고 계속 상승하며 전고점을 돌파하는 순간, 이 견고했던 의심의 벽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내가 틀렸나?'라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광기 단계(Mania): FOMO의 확산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합리화

버블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폭발적인 상승이 일어나는 시기는 바로 '광기 단계(Mania Phase)'입니다. 이 단계의 핵심 심리는 '탐욕(Greed)''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입니다. 의심하던 대중들이 더 이상 상승세를 외면하지 못하고, "지금이라도 사지 않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 것 같다"는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시장에 뛰어드는 시점입니다. 이 시기에는 언론의 헤드라인이 긍정 일색으로 도배되고, 평소 투자에 관심 없던 직장 동료, 택시 기사, 친척들이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소위 '구두닦이 소년이 주식 이야기를 하면 팔아라'라는 격언이 통용되는 시점입니다. 대중의 심리는 '의심'에서 '확신'을 넘어 '도취(Euphoria)'로 급격히 전환됩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위험한 심리적 현상은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New Paradigm)'의 등장입니다. 전통적인 가치 평가 지표(PER, PBR )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라는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이 기술은 세상을 바꿀 것이므로 기존의 평가 잣대 들이대면 안 된다"거나 "공급이 영원히 부족할 것이다"라는 식의 집단적 자기최면이 걸립니다. 사람들은 빚을 내어 투자하는 것(Leverage)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리스크 관리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됩니다. 오히려 가격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저가 매수의 기회(Buy the Dip)"라며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합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 시기의 대중은 도파민에 중독된 상태와 같아서, 이성적인 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되고 오직 보상 중추만이 활성화됩니다. 상승이 영원할 것이라는 '무적의 착각(Invincibility)'이 지배하며,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는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스마트 머니는 조용히 물량을 대중에게 넘기고(Distribution) 시장을 떠날 준비를 마칩니다.

 

3. 붕괴 단계(Blow-off): 부정, 공포, 그리고 항복(Capitulation)

영원할 것 같던 상승세가 꺾이고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될 때, 대중의 심리는 즉각적으로 공포로 바뀌지 않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부정(Denial)'입니다. "이것은 건전한 조정일 뿐이야", "세력들이 개미를 털어내려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락 초입에 대출을 더 받아 물타기(추가 매수)를 감행하기도 합니다. 이를 '현실 부정의 단계'라고 하며, 기술적으로는 '불 트랩(Bull Trap)'에 걸려드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반등하지 않고 중요 지지선을 깨며 급락하기 시작하면, 부정은 곧 '공포(Fear)'로 바뀝니다. 계좌의 수익이 손실로 바뀌고, 레버리지를 쓴 투자자들은 마진콜(증거금 부족) 압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하락세가 가속화되면 심리는 '분노(Anger)'로 진화합니다. 정부의 정책을 탓하거나, 기업 경영진을 비난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투자를 권유했던 사람을 원망합니다. 하지만 가격은 이러한 감정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추락합니다. 결국 시장에는 '절망(Despair)''항복(Capitulation)'만이 남게 됩니다. "다시는 주식(부동산/코인)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바닥권에서 투매를 하고 시장을 떠나는 단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대중이 극도의 공포와 혐오감을 느끼며 모든 희망을 버리는 이 순간이, 스마트 머니에게는 다시 시장에 진입할 매력적인 기회가 되는 시점입니다. 버블의 붕괴는 단순히 자산 가치의 하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탐욕이 공포로 처벌받고, 비이성적인 과열이 차가운 이성으로 강제 회귀하는 고통스러운 정화 과정입니다. 이 심리적 3단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자는 항상 '환희에 사서 공포에 파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버블은 의심(Disbelief) 속에서 태어나 탐욕(Greed)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합리화 속에서 자라나며, 결국 부정(Denial)을 거쳐 공포(Fear)와 항복(Capitulation)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대중 심리의 이 필연적인 사이클을 이해하는 것은 시장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남들이 공포에 떨 때 기회를 잡고 남들이 환호할 때 절제할 수 있는 투자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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